레몬 나무
작년 8월 아내와 함께 양재 꽃시장에 가서 분홍색 꽃이 예쁘게 피어있는 배롱나무 한그루와 초록색의 작은 레몬이 달려있는 레몬나무 한그루를 사 온 적이 있다.
꽃이 좋은 배롱나무는 그 꽃에 맞는 화분에 옮겨 심는 것이 배롱나무에 대한 예의인 듯하여 새로 예쁘고 고급스러운 화분을 구입하여 분갈이를 해주었다. 그러나 사 올 때 그렇게 싱싱하던 배롱나무는 분갈이를 한 이후부터 시름시름 시들기 시작하였다. 아내와 내가 다시 분갈이를 해주고 물과 비료를 충분히 주었으나, 배롱나무는 회생하지 못한 채 결국 한 달 정도 만에 말라죽고 말았다.
반면 레몬나무는 사 올 때부터 그 작은 나무에 아홉 개나 되는 레몬을 힘겹게 달고 있었고, 배롱나무만큼 싱싱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어설프게 분갈이를 했다가는 바로 고사할 것 같아 분갈이도 하지 못한 채 플라스틱의 볼품없는 화분 그대로 지금까지 키워왔다.
아내와 내가 레몬나무에 물과 비료, 영양제까지 열심히 주었으나 나무는 좀처럼 새로운 잎을 틔우지 못하였다. 새로운 잎을 틔우기는커녕 열매를 키우고 익게 하는데 온 힘을 다한 잎들은 한잎 두잎 떨어져 나갔다. 처음 사 올 때 무성하던 잎들이 이제는 다 떨어지고 엉성하게 되어 육안으로 그 잎사귀 수를 셀 수 있을 지경이 되었다.
사 올 때 꼿꼿이 서 있던 레몬나무는 그 줄기가 제대로 굵어지지 못하여 여전히 가냘프기만 하다. 거기에다가 열매가 한쪽 가지에만 열리다보니 지지대를 세워서 보조를 해주었음에도 계속 한쪽으로 기울어져만 갔다. 레몬나무는 모든 영양분을 아홉 개의 열매를 키우고 익게 하는데 소진하여 새로운 잎을 틔우지도 못하고 그 줄기가 굵어지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레몬나무에 물을 주는데, 나무에 연보라색의 새로운 꽃들이 많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레몬나무는 그 가느다란 가지에 다 익은 열매를 달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꽃을 피우는 이중의 일을 힘겹게 하고 있던 것이다.
익은 열매를 진작에 나무에서 따주었어야 하는데도, 노랗게 익은 열매가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을 계속 보고자 하는 욕심에 그냥 두었던 것이 미안하다.
레몬나무를 보며 부모님을 생각하게 된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이 어리든 장성하였든 관계없이 언제 바라봐도 좋을 것이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기꺼이 하실 것이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직접 돌보지는 못하더라도, 부모님에게 계속 의존하면서 부모님의 휘어진 등골이 더 휘어지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 아내와 함께 레몬나무에서 익은 열매들을 모두 따주었다. 그리고 레몬나무에 흙을 북돋워 줄기를 세워주니 오랜만에 휘어진 나무가 똑바로 서서 보기가 좋다. 내 마음도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옛날 어떤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집의 벽을 수리하기 위하여 벽을 뜯었는데, 벽 속에 한 마리의 도마뱀이 갇혀 있더라는 것이다. 그 도마뱀은 벽 밖에서 안으로 박은 긴 못에 꼬리 가운데가 물려 꼼짝도 못 하고 벽속에 갇혀 있었는데, 그 못은 10년 전 그 집을 지을 때 박은 못이었다는 것이다.
집주인은 그 도마뱀이 먹을 것이 전혀 없는 벽 속에서 무엇을 먹고 10년 간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여 벽 수리를 잠시 중단하였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서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와서 못에 박혀 꼼짝도 못 하는 그 도마뱀에게 먹여주더라는 것이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다른 도마뱀은 한결같이 매일 먹이를 물어와서 벽속에 갇혀버린 그 도마뱀을 돌보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도마뱀과 다른 도마뱀이 어떤 관계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10년 간을 매일 먹이를 물어와서 갇혀 있는 그 도마뱀에게 먹여주어 살아남게 한 것에 비추어 보면, 다른 도마뱀은 필시 그 도마뱀의 어미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아버지는 34년 전 52세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같은 52세이던 어머니는 이제 86세의 할머니가 되셨다. 어머니는 기력도 많이 약해지고 키도 많이 줄어들고 등도 굽어셨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영원한 불효자이다.